양은 문이 열린 모습을 불러오고 생식과 생산 그리고 발산하는 힘을 환기시킨다. 반면 겨울이면 마을의 출입문은 닫힌다. 겨울은 닫힌 문을 상징으로 하는 음의 계절이다. 양은 차가운 계절 내내 음에게 사방이 포위된 채 지하 은거지에 거처해야만 했다.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150
입동과 소설은 음기의 순도가 100%의 절기이다. 점점 줄어들던 양의 기운이 마침내 음의 기운으로 가득해지는 시기이다. 식물도 동물도 쉬어간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준비하고, 결실을 내보내고 잎까지 떨군 나무들도 겨울을 준비한다. 자연이 쉬어가니 사람들도 쉬어간다. 밤새 잘 자고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듯이, 잘 쉬어야 다가오는 봄을 잘 준비할 수 있다. 쉼은 멈춤이 아니라 가장 뜨겁게 그러나 가장 조용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음기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는 가장 응축된 에너지를 품고 있는 11월은 겨울이지만 이미 봄을 품고 있다. 자연은 늘 한걸음 빠르다.
입동(立冬) (양력 11월 7일 전후로 올해는 11월 8일이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입동(立冬)이라고 한다.입동 즈음에는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 낙엽이 지는 데에는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 위한 자연의 이치가 숨었다. 입동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의 기온은 차다. 뚝 떨어진 기온과 찬 바람은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곁의 사람을 살펴보고 마음을 더 내어주게 된다. 입동에는 일정 연령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이 있다. 치계미는 본래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는데,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이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이 치계미는 반드시 지켰다고 한다. 아마도 음한 노인들이 겨울철 추위를 잘 견디길 바라는 마음이 이 치계미에 담겨 있을 것이다.겨울이 시작되는 입동은 겨울과 다음 계절인 봄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 보이지 않게 봄을 품고서 긴 휴면상태로 돌입한다. 씨앗 한 알에는 다음 해 봄이면 활짝 피울 꽃과 잎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다.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지만, 생명력이 가장 감축되는 시기가 입동이다. 에너지의 소모를 가장 최소화하는 초절전 모드의 절기이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략이 숨어 있다. 물과 땅까지 얼려버리는 자연에 대항하기보다는 내년에 살아남으려는 강렬한 의지를 내부에 숨기고 그 뜨거움으로 겨울을 버텨낼 준비를 해야 한다. 낙엽 타는 냄새가 그리울 때 즈음이 베티버를 소환하기에 적합하다.
01 베티버
(Vetivert, Vetiveria zizanoides)
벼과(Poaceae)의 다년생 풀로 줄기는 곧고, 잎은 좁고 가늘면서 길다. 뿌리는 황갈색에서 붉은 기가 도는 회색으로 구불하면서도 매우 길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열대에서 아열대에 분포하고 있는 베티버의 원산지는 인도이다. 주요 산지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자바섬, 필리핀, 코모로 군도, 일본, 서아프리카, 레위니옹섬, 남미 등이다.“쳐서 자르다”를 묘사하는 타밀어 vetiverr에서 유래한 베티버 오일은 건조한 뿌리를 수증기 증류법으로 추출한다. 오래된 뿌리에서 추출한 오일일수록 향과 질이 더 좋다. 달콤하면서도 흙, 나무, 머스크의 향을 함께 품은 베티버 오일은 뿌리와 촉촉하게 젖은 땅을 연상하게 한다. 중후하지만 깊이 있는 향은 강하고 고착성이 있는 베이스 노트이다. 다른 에센셜 오일과 블렌딩시 소량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효과가 있다.
인도의 아율베다에서 베티버의 뿌리는 갈증이나 열과 두통, 관절염과 피부의 염증에 사용되었고 종교의식에서 훈향하기도 했다. 베티버의 뿌리로 만든 부채나 발에 물을 끼얹고 바람을 일으키면 흔들릴 때마다 좋은 향이 나서 부채나 발, 돗자리를 짜는 데 사용되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뿌리는 경사지나 제방의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도와주어 토양의 침식을 막아주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인도와 자바에서는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이용했다.
베티버의 에너지는 불안정한 자기 정체성의 회복과 대지의 힘과 안정된 존재감을 확인시켜 준다.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지치고 힘들어진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회복시켜 준다.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정신과 물질 사이의 간극을 좁혀 중심을 찾고 자신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가브리엘 모제이는 베티버 오일은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양분을 흡수하고 채우는 능력을 상실해 완벽함을 지속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한다.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시소를 타기도 하고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베티버는 마음 깊은 곳까지 안정시키고 정화하면서 기를 되돌려주고 활성화한다. 베티버에서 느껴지는 흙내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의 균형이다.
외부의 자극, 분노, 히스테리, 화를 진정시켜 주는 베티버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지쳐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위장 기능의 문제,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에 도움이 된다. 신체의 결합조직을 강화해 주는 작용은 약해진 관절과 약하고 늘어진 피부에 사용되거나 탄력이 떨어진 노화 피부와 탈모 관리에 쓰이기도 한다. 호르몬 분비를 조절해 주는 작용은 불규칙한 생리나 갱년기 증상, 생리전 긴장 등의 증상에 도움이 되고, 성과 관련된 친밀감을 주고 최음작용을 한다.
향기가 강하므로 소량을 사용하도록 하고, 임신부와 어린아이는 사용을 주의한다.소설(小雪) (양력 11월 22일 전후로 올해는 11월 22일이다.)24절기 중 스무 번째 절기. 이날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小雪)이라고 한다. 눈이 내릴 정도로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한다.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첫 추위가 온다. 사람들은 소설 전에 김장을 하기 위해 서두르고. 이미 농사철은 지났지만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위한 잔일을 한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한다.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한다. 한국세시풍속사전
소설에는 날씨가 관련한 재미있는 속담들이 있다. 소설은 첫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기시작하고 바람은 거세게 분다.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급강하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 찬 바람이 어느 순간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불고 아직은 따뜻한 햇살을 비추기도 해서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1월에 마당에서 피어난 장미나 느닷없이 피어난 개나리도 잠시 봄이 온 줄 착각했나 보다. 한편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 농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겨울이 추워야 그 추위를 온전히 감당하고 건강하게 보리가 잘 자라듯이 씨앗을 잘 발아시키려면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견뎌내야 한다. 소춘(小春)이라고 착각해서 피어나는 꽃은 제 역할을 하기가 힘들다. 온난화가 시작되고 기후에 변화가 생기니 피어나지 않아야 할 계절은 피어나는 식물들이 있다. 그런데 제 계절을 다 견디고 성장하고 피어나는 식물들의
에너지를 가지지 못하고 활력도 없다고 한다. 더우니 여름이고 추우니 겨울이다. 추운 날씨에 몸은 움츠러들지, 오히려 안에서 내면을 채우기에는 너무나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춥디추운 겨울은 응축의 시기이다. 씨앗의 에너지를 듬뿍 담고서 열정과 안정감을 품고 있는 코리안더로 소설을 마중나가기를 추천한다.
02 코리안더
(Coriander, Coriandrum sativum)
태국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매력적이 풍미를 지닌 고수가 바로 코리안더다. 일년생 식물로 30~90cm까지 자라고, 밝은 녹색의 잎과 가냘픈 흰색의 산형과 꽃을 피우는 코리안더는 지중해와 서아시아가 원산지이다. 전 세계에서 상엽용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온대 지방에서 널리 퍼져 자란다. 으깬 씨앗을 수증기 증류법으로 추출하
는 코리안더 오일은 달콤하면서 약간 우디, 스파이스향이 난다. 속명 coriandrum는 ‘침대벌레’를 뜻하는 라틴어 koros에서 기원하였는데, 코리안더의 잎사귀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이 벌레의 냄새와 닮았기 때문이다.
3,000년이 넘게 재배되어 왔으며 가장 오래된 허브 중 하나이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말린 씨앗을 갈아서 조미료나 향신료로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인도의 커리 분말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는 코리안더 씨앗은 풍미제와 향신료로 유명한 데, 태국이나 베트남 요리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고대 헤부루인들은 신이 이스라엘의 백생들에 내려
준 만나(manna)에 비유하였다. 파피루스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코리안더와 신선한 마늘을 와인에 담가 최음제로 복용하기도 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사랑의 묘약에 쓰이는 마녀의 허브로 알려져 있다. 중세의 모든 의학서적, 성서,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문서에 언급되어 있다. 중국 의학에서 위장, 심장의 강장을 위해 쓰였고, 아율 베다에서는 관절염 및 기타 염증성 질환을 위해 사용되었다.
가브리엘 모제이는 코리안더가 안정감, 평화, 현실의 영속성 등의 느낌을 고취하도록 하고, 이 감정을 자발성과 열정으로 연결시켜, 기쁨을 부정하지 않고 안정감을 이루어내도록 돕는다고 한다. 그래서 예측 가능한 일과 규칙적인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복잡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맞는 오일이다.
따스하고 건조한 코리안더의 에너지는 위와 장의 기를 순환하게 한다. 소화를 자극하고 가스를 배출시키는 작용으로 식욕부진, 소화불량, 복부 팽만감, 헛배부름을 완화해 준다. 관절염, 통풍, 근육통 및 통증, 류머티즘을 위해 권유된다. 신경을 강장하는 작용은 기와 신경을 강화하여 전반적인 무기력감, 심리적 피로감, 신경 탈진과 같은 증
상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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